닫기

김문수 “日국적 문제, 이해 어려워… 역사 앞에 솔직해야”

기사듣기 기사듣기중지

공유하기

닫기

  • 카카오톡

  • 페이스북

  • 트위터 엑스

URL 복사

https://biz.asiatoday.co.kr/kn/view.php?key=20241021010010869

글자크기

닫기

정채현 기자

승인 : 2024. 10. 20. 17:55

'아투TV-고성국 초대석' 출연
"13대조, 임진왜란때 의병장으로 순국
증조부는 국채보상운동" 논란 반박
"친일파 프레임, 정신승리 될 수 없어
치욕적인 아픈 역사 절대 잊어선 안돼"
김문수 고용노동부 장관(왼쪽)이 지난 17일 본지 유튜브 채널 '아투TV-고성국 초대석'에 출연해 일본 국적문제 등 정치권의 '친일 프레임' 논란에 반박하고 있다. /송의주 기자 songuijoo@
김문수 고용노동부 장관을 향한 정치권의 친일파 프레임이 지속되자 그는 "임진왜란 때 제 13대조 노항공께서 의병장으로 순국하셨고, 증조부는 국채보상운동까지 하셨다"고 반박했다.

그는 자신의 '일제시대 선조들 국적은 일본' 발언에 대해서도 "왜 문제 삼는지 이해하기 어렵다"며 "그땐 외국에 나가더라도 대한민국 여권이 없어서 전부 일본 여권을 가지고 나갔다. 법에도 다 그렇게 돼 있었다"고 밝혔다.

김 장관은 지난 17일 본지의 유튜브 채널 '아투TV-고성국 초대석'에 출연해 그를 향한 논란에 반박했다.


-인사청문회 때부터 지금까지 야당 의원들이 일제 강점기 국정 문제를 비판하고 그렇습니다. 어떻게 설명하시는지요.
"일제 식민지 시대 때 조상의 국적이 뭐냐 이건데 우리가 어릴 때부터 다 체험적으로 알고 있는 겁니다. 손기정 선수는 일장기를 달고 베를린 올림픽에 나갔잖아요. 법에도 다 그렇게 돼 있었는데 '이 과거에 지나간 것은 다 무효다', '1965년 한일 기본조약에서 무효가 되지 않느냐' 하며 지나간 과거에 대해 다 무효고 이렇게 이야기를 하면은 (안 됩니다)."

-그런 것을 정신 승리라고 하겠죠.

"사실인 걸 아니라고 해버리면 과연 그게 정신 승리일까요. 우리가 역사 앞에서 솔직해야 되지 않겠습니까."

-우리가 정말 치욕적인 아픈 역사를 잊어서는 안 되지만 거기에 계속 아닌 것을 주장하고 이럴 이유가 없는데요.

"임진왜란 때도 저희 13대조가 의병장으로 가셔서 순국해 당시에 나라에서 지금의 서울시장에 해당하는 벼슬을 받았어요. 돌아가신 다음에 한성부의 판윤이라고 받았고, 증조할아버지께선 국채보상운동도 하셨고요. 저는 제가 중학교 때도 한일회담 반대 시위를 했었고 상당한 정도로 항일, 반일 이것을 기본으로 생각하고 살아왔는데 저 보고 친일파라 이렇게 말할 때는…제대로 보지도 않고 친일파라 그러면 다 친일파가 돼버리죠."

-한일회담 반대를 중학생 시절에 하셨군요. 김 장관은 한일 국교 정상화를 추진하는 박정희 전 대통령에 대한 반대 시위를 하셨는데 그 후에 박 전 대통령에 대한 인식이 완전히 바뀌셨잖아요.

"박정희 전 대통령께서 제가 어릴 때 꿈꾸던 것을 다 이뤄주셨거든요. 첫째, 저는 전기가 없어서 호롱불 밑에서 공부를 했는데 지금 우리나라는 이렇게 밝잖아요. 또 어릴 때 줄을 서가지고 공동 우물로 해도 물이 안 나왔는데, 지금은 따뜻한 물이 쏟아지잖아요. 그리고 어릴 때는 배가 고파 밥 한 끼 배불리 먹는 게 제 꿈이었고, 양말 한 켤레를 못 신었는데 지금은 옷장에 옷이 너무 많아요."

-대통령 4대 개혁 중 가장 체감도가 높은 개혁 성과를 내온 분야가 노동개혁 분야라는 평가가 나옵니다. 김 장관의 '노동 정책 방향'에 대한 설명 부탁드립니다.

"1987년 민주화 이후 약 36년간 우리 대한민국의 노동 현장은 무법 천지였습니다. 법치가 점점 뒷걸음치는 현실이었는데 윤석열 대통령의 확고한 법치 확립 의지와 실행으로 지금 현재 노동손실일수가 전 정부에 비해 약 44% 수준 이하로 떨어졌어요. 또 노사분규 지속 일수도 절반 이하로 떨어져 현재 역대 가장 평온한 현장이 됐습니다. 노동자들이 집회를 하면서 국회 앞에서 파이프를 휘둘러 경찰들이 다쳐도 구속도 잘 못 시켰는데, 이런 부분이 거의 해결됐어요."

-윤석열 정부가 법치주의를 강조하면 민노총, 한노총 등 노조에서 강력한 반발이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오히려 파업일수도 줄고 노동손실 일수도 큰 폭으로 줄었습니다. 이유가 뭐라고 보십니까.

"결국 노동현장의 법을 지키지 않으면 그 피해가 기업인들에게만 있는 것이 아니라 노동자 자신들에게도 피해가 있죠. 사용자만이 아니라 노동자들 내부에서도 '우리가 법은 지켜야지' 이런 국민적 합의가 노사정 간에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다고 저는 보고 있습니다."

-역대 노동부 장관 중에 노동 현장 바닥에서 몸으로 부딪치면서 노동 문제를 해결하려고 했던 노동운동가 출신이 노동부 장관을 했던 적이 많지 않았습니다.

"저는 공장에서만 거의 7년을 일했고, 노조위원장도 했습니다. 해고도 2번 됐고, 서울노동운동연합이라는 걸 만들어 감옥도 가고 노동자복지협의회를 만들어 부위원장도 했습니다."

-강성 투쟁 노선을 버리고 그 후로 전향이란 걸 하셨는데, 저쪽에선 '배신자'라는 얘기를 하고 있습니다. 그런 얘기를 들으시면 어떠신지요.

"제가 일하던 동지를 배신한 것도 아니고, 1990년 소비에트가 무너지고 또 동독이 무너지고 철의 장막이 열리고 난 다음에 '비참한 세상이 바로 공산주의, 사회주의구나' 했습니다. 공산·사회 주의를 제가 버린 것인데 저보고 배신자라고 하는 그분들은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묻고 싶어요."
정채현 기자

ⓒ 아시아투데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기사제보 후원하기

댓글 작성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