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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수연의 오페라산책]국립오페라단 ‘죽음의 도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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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혜원 기자

승인 : 2024. 05. 27. 10:24

르네 마그리트 회화처럼 그려내...조화롭고 독창적인 무대
죽음의 도시1
국립오페라단의 오페라 '죽음의 도시'의 한 장면. /국립오페라단
흡사 르네 마그리트의 회화작품 같았다. 하얀 천으로 얼굴을 감싼 마리의 망령은 마그리트의 '연인들'을 연상시켰고, 2막 거리의 풍경 속에 우뚝 선 가로등은 또 다른 그림 '빛의 제국'을 생각나게 했다. 국립오페라단이 23~26일 예술의전당 오페라극장에서 국내 초연한 에리히 코른골트의 오페라 '죽음의 도시'는 작품 배경이 벨기에 브뤼주다. 그런 연유 때문인지 이번 오페라의 무대 디자인과 색조, 그리고 연출은 같은 벨기에 화가 르네 마그리트의 회화 속 이미지와 연결됐다.

코른골트가 약관의 나이에 작곡하고 1920년 무대에 올린 '죽음의 도시'는 한국에서 이제야 선보이지만 오페라의 몇몇 아리아는 우리 성악가들에 의해 종종 연주되곤 했다. 그 유명 아리아들이 작품의 맥락 안에서 어떻게 연주되는지 실제 감상한 것도 이번 초연의 묘미였다고 본다.

차분하고 세련된 색감을 바탕으로, 단순하고 자유롭게 공간 이동을 시도한 무대 디자인은 극심하게 지속되는 주인공의 망상 속에 함몰되지 않고 작품의 틀을 단단히 유지시키는데 많은 역할을 했다. 특히 3막 대축일의 행렬이 창문을 넘어서 파울의 방을 가로지르는 장면에서, 물리적 공간의 제약을 상상적 합의를 통해 매끄럽게 전환하는 방식이 신선하게 여겨졌다. 층고를 높이 활용한 연출 또한 우리 오페라에서는 자주 보기 어려운 모습이었다.

죽음의 도시2
국립오페라단의 오페라 '죽음의 도시'의 한 장면. /국립오페라단
연출을 맡은 줄리앙 샤바는 이 프로덕션에 대해 무대에서 체화되는 상실과 우울감에 대해서 말한다고 했다. 상실감에서 비롯된 파울의 광기는 마치 '살로메'의 네크로필리아(시신 애호)처럼 마리의 금빛 머리칼에 집착한다. 이 오페라에서도 죽은 부인의 금발은 더없이 소중하고, 더없이 섬뜩한 상징으로서 등장하는데 결국 주인공의 강박적 환상을 완성하는 도구로도 사용된다. 더불어 소위 '과거의 신전'에 전시된 마리의 망령이 어느 순간 움직이면서 부자연스러운 동작으로 파울과 교감할 때 연출이 의도한 체화가 이뤄졌다고 생각한다.
이처럼 소용돌이치는 감정의 파고는 강렬한 가창을 통해 객석에 전해졌다. 파울을 노래한 테너 로베르토 사카는 노련하게 극을 이끌어 갔다. 사카는 주역을 맡기에 비교적 많은 나이라는 우려에도 불구하고, 파울 역할 전문 테너답게 망상에 사로잡힌 신경질적인 인물을 유연한 가창과 연기로 잘 그려냈다. 2막 마지막 부분에 마리에타와 불꽃 튀며 주고받는 이중창, 갈등이 엽기적 결말로 이어지는 3막 등에서 발군의 표현력으로 긴장을 고조시켰다.

소프라노 레이첼 니콜스는 날카롭고 파워풀한 발성으로 마리와 마리에타 역을 동시에 소화했다. 가창에 서정성이 더해졌다면 더욱 좋았으리라고 생각되지만 시시각각 변화하는 인물의 감정과 상황을 맞춰가며 파울의 불안정한 내면이 고스란히 드러나도록 만든 음악적 기민함이 돋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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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립오페라단의 오페라 '죽음의 도시'의 한 장면. /국립오페라단
바리톤 양준모는 프랑크 역을 맡아 예의 중후한 연기와 진지한 노래를 들려줬다. 2막에서 그의 주특기이기도 한 아리아 '나의 갈망이여, 나의 망상이여'(Mein Sehnen, mein Wahnen)를 흠잡을 곳 없이 노래했는데 다음 장면이 다소 조급하게 이어져 여운을 충분히 음미하지 못한 것은 아쉬운 대목이다.

최근 몇 년간 국립오페라단의 공연 중에서 가장 성공적이었다고 평가하고 싶은 이날 공연의 일등 공신으로 로타 쾨닉스가 이끄는 국립심포니오케스트라를 꼽는다. 쾨닉스와 국립심포니오케스트라는 무대와의 밸런스를 잘 유지하며 출중한 연주를 선보였다. 풍성하고 유려한 사운드의 토대 위에 쉴 틈 없이 몰아붙이는 음악적 강스파이크를 구사해 역동적 기운을 느끼게 했다. '조화롭고 독창적인 프로덕션이란 이런 것이다'를 보여준 모처럼의 수작이다.

/손수연 오페라 평론가·단국대 교수

손수연
전혜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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