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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인의 영결식은 이날 서울대병원 장례식장에서 약 1시간에 걸쳐 진행됐다. 이 자리에는 유족과 영화인 등 약 100명이 참석했다.
영결식 진행은 배우 강석우가 맡았다. 원로 배우, 제작자 황기성 대표, 이장호 감독, 양윤호 한국영화인총연합회 이사장, 장미희, 김성수 감독, 김경식 청주대학교 예술대학교 학장이 추도사를 낭독했다.
신영균은 "나보다 먼저 가시니 너무너무 안타깝다"면서 "하늘나라에 잘 가셔서 좋은 작품 많이 준비해달라. 제가 그곳에 가면 또 감독님의 작품에 출연하겠다. 나는 죽어서도 영화배우로 살고 싶다"라고 말했다.
공동 장례위원장을 맡은 이장호 감독은 고인과 함께 한국 영화를 이끈 인물로 신상옥·유현목·김기영 감독 등을 언급하며 "1920년대생으로 1950년대에 데뷔해 한국 영화사를 빛낸 대표 감독들이다. 개인적으론 제가 영화감독의 길을 걸어오는 동안 등불과 이정표인 선배들"이라고 전했다.
이 감독은 고인이 1986년 자신의 영화 '허튼소리'에 대한 당국의 검열에 반발해 은퇴 선언을 한 것을 회고하며 "당시 모습이 지금도 눈에 선하다. 언제나 잊히지 않을, 온몸으로 직접 보여주신 가르침"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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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서울의 봄'을 연출한 김성수 감독도 함께했다. 김 감독은 "김수용 감독님의 영화는 시대의 아픔을 사실적으로 솔직하게 표현했다. 삶의 피로와 외로움, 등뼈까지 아려 오는 허기까지 오롯이 담아냈다"고 말했다.
이어 "당대 관객이 휘청거리며 건너온 고달픈 세월을 스크린에 고스란히 투사함으로써 관객의 마음을 따뜻이 위로했다. 그 시대 영화가 해야 할 일을 김수용 감독님의 영화가 성실히 완수한 것"이라고 덧붙였다.
생전 소탈했던 고인의 모습에 대한 회고담도 이어졌다. 제작사 황기성사단의 황기성 대표는 "평생 진담을 농담처럼, 농담을 진담처럼 에둘러 말하길 좋아하셨다. 그렇게 109편의 영화를 남겨 놓고 농담처럼 지금 우리를 떠나고 계신다"면서 "늘 자기 작품에 자신이 넘쳤고, 누구보다도 제자를 사랑했다. 영화계에는 '김수용 사단'이라는 용어까지 돌았다"고 회고하기도 했다.
후배 감독인 양윤호 영화인총연합회 회장도 부산국제영화제에서 고인과 함께 보낸 시간을 떠올리며 "그때 참 멋있고 유머가 많은 분이라고 느꼈다. 후배 영화인들은 감독님을 영원히 멋있고 유머가 있었던 존경스러운 감독으로 기억할 것"이라고 전했다.
한편 김 감독은 3일 노환으로 별세했다. 1929년생인 그는 1960~70년대 한국 영화를 대표하는 감독으로 1958년 '공처가'로 데뷔해 90년대까지 약 30년이 넘게 왕성한 활동을 이어왔다. 연출한 작품은 극 영화만 109편이고, 정책 홍보 등에 쓰인 문화영화 등을 합하면 121편에 달한다.
한국 문예영화를 대표하는 감독으로 꼽히는 고인은 '굴비' '갯마을' '저 하늘에도 슬픔이' '안개' 등의 작품을 남겼다.
장지는 서울추모공원에 마련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