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 "책임전가 용납 못해…자업자득" '발끈'
|
로이터통신에 따르면 드미트리 페스코프 크렘린궁 대변인은 25일(현지시간) 기자회견에서 니콜 파시냔 아르메니아 총리를 겨냥해 "우리는 진정한 용기를 보여준 러시아 평화유지군에 책임을 돌리려는 시도에 단호히 반대한다"고 말했다.
페스코프 대변인은 러시아 평화유지군이 나고르노-카라바흐에 남아있을 것이냐는 질문에 "지금 확실하게 말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며 말을 아꼈다.
국제적으로 아제르바이잔 영토로 인정되지만 아르메니아계 주민들이 대거 거주해 분쟁이 끊이지 않았던 '캅카스의 화약고' 나고르노-카라바흐에서 지난 19일 아제르바이잔군과 아르메니아계 자치세력 간 무력 충돌이 발생했다. 아제르바이잔은 다음날 사실상 승리를 선언하고 이 지역에 대한 본격적 통합 절차에 착수했다.
이런 가운데 파시냔 총리는 전날 "아르메니아의 독립과 주권을 회복하기 위해 대내외 안보 정치를 수정·보완해야 한다"면서 "현재 안보동맹은 '비효율적'이며 '불충분'하다"고 지적했다. 그는 러시아 평화유지군이 나고르노-카라바흐에서 발생한 아제르바이잔군의 군사 공세를 저지하지 못하고 방관했다고 비난했다.
아르메니아는 러시아가 주도하는 옛 소련권 군사·안보협력체 집단안보조약기구(CSTO) 소속으로, 그간 러시아의 도움을 받아 나고르노-카라바흐 내 불안한 평화를 이어왔다. 하지만 우크라이나 전쟁 발발 이후 이 지역에 대한 러시아의 개입이 줄어들고, 아르메니아가 친서방 쪽으로 기울면서 아제르바이잔이 '기회'를 잡았다는 분석이다.
러시아 외무부는 파시냔 총리의 발언에 대해 "러시아에 대한 용납할 수 없는 공격이 담겨 있다"며 "러시아와의 관계를 망치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어 "서방의 약속에 속아 나고르노-카라바흐 사태를 초래한 자신을 탓하라"고 반박했다.
이날 아르메니아 예레반에서 파시냔 총리와 직접 회담한 블라디미르 콜로콜체프 러시아 내무장관은 "서방은 우크라이나 상황을 이용해 러시아를 남캅카스 지역에서 내쫓고자 하며, 미국은 아르메니아와 아르메니아인에 대해서는 신경 쓰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반면 매슈 밀러 미국 국무부 대변인은 이날 "이로써 러시아가 안보 파트너로서 신뢰할 수 없다는 점이 드러났다"며 나고르노-카라바흐 지역 주민의 인권을 보호할 국제적 임무를 지지한다고 밝혔다.
한편 아제르바이잔이 나고르노-카라바흐을 장악하며 '인종청소' 공포에 사로잡힌 아르메니아계 주민들은 아르메니아로 대거 탈출하고 있다. 아르메니아 정부에 따르면 이날까지 나고르노-카라바흐에 거주했던 주민 6500명 이상이 아르메니아로 피신했다.
이 과정에서 나고르노-카라바흐 지역 스테파나케르트 외곽의 한 주유소에서 연료 탱크가 폭발해 200명 이상이 부상했다. 지역 당국자는 일부 부상자가 매우 위중한 상태라며 사망자가 발생할 가능성도 시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