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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반란 수괴(러시아 입장에서) 예브게니 프리고진 바그너그룹 수장의 벨라루스 망명, 세르게이 수로비킨 러시아군 통합 부사령관의 갑작스런 행방불명, 더욱 거세질 것으로 예상되는 우크라이나군의 대반격 등 러시아 정국을 둘러싼 대내외 불안 요인은 언제 터질 지 모르는 지뢰처럼 곳곳에 남아 있습니다. 특히 자국내 불만세력과 반대파에 대한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의 탄압이 앞으로 강도를 높일 가능성이 높다는 분석이 나오고 있는 만큼 러시아 정국이 더욱 큰 혼란에 빠질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는 형국입니다.
푸틴 대통령이 무장반란 발생 후 첫 공개석상에 모습을 드러냈던 지난 28일 바그너그룹에 지난 1년간 지원했던 2조5000억원의 자금 용처를 조사하겠다고 천명한 것은 이를 잘 보여주는 대목입니다. 당초 알렉산드르 루카셴코 벨라루스 대통령의 중재로 반란 가담자를 처벌하지 않기로 프리고진과 간접적으로 합의하기는 했지만, '잔혹하고 뒤끝이 길다'는 세간의 평가처럼 자금 용처를 빌미로 피의 보복에 나서겠다는 의지를 내비친 것이죠.
프리고진이 푸틴 정권을 직접적으로 겨냥한 것이라는 언급을 하지 않았지만, 이번 바그너그룹의 무장반란과 같이 특정 세력이 정부나 절대권력자에 대한 불만을 표출하며 무력에 기반해 비합법적으로 정국을 장악하려는 시도를 통상적으론 '쿠데타(Coup d'Etat)'라고 부릅니다. 물론 일반 시민들이 봉기해 정권을 무너뜨리는 경우도 있기는 하지만, 흔히 쿠데타라고 하면 민주적 절차로 출범한 민간정부를 군부가 총칼로 뒤집은 사례가 대부분입니다. 지난 2021년 2월 1일 미얀마에서 발생한 군부 쿠데타가 대표적 사례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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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렵사리 움트기 시작한 민주주의의 싹을 개인적 욕심에 사로잡힌 정치군인들이 군화로 사정없이 짓밟아버린 사례는 대한민국에서 발생한 1961년 516 군사 쿠데타와 1979년 1212사태, 1973년 칠레의 아옌데 사회주의 정부를 무너뜨린 피노체트 군부 쿠데타 등 무수히 많습니다. 특히 미얀마 바로 옆에 위치한 태국은 겉으로 보이는 절차적 민주주의는 지켜지고 있으나 1932년 입헌군주제 도입 이후 22차례(실패 9차례 포함)나 발생한 군부 쿠데타 때문에 진정한 의미의 민주주의를 실현하지 못하고 있는 안타까운 나라입니다.
지난 5월 14일 치러진 총선에서도 올해 42세인 젊은 지도자 피타 림짜른랏 대표를 내세운 전진당(MFP)이 151석을 얻어 제1당을 차지하는 등 역사적인 승리를 거뒀지만, 군부가 임명한 상원의원 250명까지 포함한 상하원 전체의원의 과반수 동의를 얻어야 한다는 군사정권 시절 만들어진 난센스 같은 제도 때문에 쉽사리 정권교체를 이루지 못하고 있습니다.
반면 1991년 8월 미하일 고르바초프 대통령을 축출하기 위해 소련 공산당 보수파와 군부가 공모해 일으킨 쿠데타는 역설적으로 냉전 종식과 러시아의 민주화를 앞당기는 계기가 되기도 했습니다. 당시 개혁파 정치인이었던 보리스 옐친은 군부 쿠데타에 목숨 걸고 맞서 이를 저지시키고 소련 해체와 함께 10여년에 불과했던 아주 짧은 러시아의 민주주의를 이뤄냈습니다. 경우는 다르지만 이번 바그너그룹의 쿠데타 시도가 2000년 이후 실종된 러시아 민주화에 어떤 영향을 미칠 지 주목됩니다.
이런 와중에 지난 23년간 절대 권력자로 군림해온 푸틴 대통령의 권위가 돌이킬 수 없는 치명상을 입으면서 바그너그룹의 무장반란이 '종말의 시작'이 될 것이라는 분석이 나와 눈길을 끌었습니다. 영국의 일간지 더 타임스가 30일자 보도를 통해 "푸틴 대통령이 앞으로도 많은 도전을 막아낼 수는 있겠지만, 장기적으로는 치명상을 입게 될 것"이라며 "역사가 그의 몰락을 기록할 때 최후의 게임이 이번 일에서 시작했다고 말할 것"이라고 전망한 것은 의미심장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