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비슷한 시기 한 지상파 방송은 베트남 기획보도를 내보내며 인터뷰이의 말에 "취직하려는 은행의 자본금 중 80%도 한국 자본이어서"란 자막을 내달아 보냈다. 영상 속에서 인터뷰이가 언급한 은행의 이름은 BIDV로 베트남 1위 국영은행이다. 한국의 하나은행이 15%의 지분을 확보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졸지에 한국 자본이 베트남 1위 국영은행의 자본금 80%를 차지하고 있단 황당무계한 내용이 전파를 탄 것이다. 베트남이 아니라 미국·중국·일본이었다면 애당초 이런 자막이 달렸을 리도 없거니와 다들 뭔가 잘못됐다는 것을 쉽게 눈치 챘을테지만 그렇지 못했다.
베트남 권력의 핵심이라 불리는 정치국원들과 주요 인사들이 모인 자리에서 이 얘기를 꺼낸 적이 있다. 황당하다는 웃음과 함께 "중국과 일하면 '친중·반미'고 미국과 손잡으면 '친미·반중'이라는 것은 너무 유치한 접근법 아니냐" "어떤 나라도, 어떤 정치인도 그런 식으로 외교를 하진 않는다"는 답들이 돌아왔다.
"베트남은 모든 나라의 친구"란 실리주의·실용주의적 외교와 그들이 지향하는 다자주의를 다시금 확인한 것이다. 베트남 정치인들에겐 베트남 '인민'으로서의 반중정서가 있지만 전면에 드러내지 않고, 깜라인만을 열어 미국 군함을 받으면서도 기저엔 필연적으로 민주주의와 인권을 강조하는 미국에 대한 부담이 깔려있을 수밖에 없다. 그러니 차라리 반중파·반미파면 몰라도 친중파니 친미파니 하는 것은 '따뜻한 아이스 아메리카노'와 같은 난센스다.
베트남을 직접 들여다보며 분석하기에도 부족한 판국에 베트남어조차 제대로 할 줄 모르는 외신기자가 쓴 보도를 맹신하며 한단계 더 거쳐 보거나 중국에만 대입해버리니 자연스레 '진짜' 베트남과는 먼 이야기가 나올 수밖에 없다.
술자리에서 할 법한 "보 반 트엉 국가주석이 보 반 끼엣 전 총리의 손자"라는 농담마저 한국 언론에선 그대로 나온다. 둘의 생년월일, 끼엣 전 총리의 일대기만 훑어도 시간 상으로, 물리적으로 불가능하다는 것이 명백한데 베트남을 한없이 가볍게 본 나머지 이 같은 최소한의 노력조차 하지 않고, 하지 못하는 것이다.
베트남은 우리와 '포괄적 전략적 동반자 관계'로 정치·외교·경제·사회·문화적 중요성이 나날이 커지고 있다. 이제는 대충, 가볍게 볼 것이 아니라 제대로 들여다 보는 성의와 예의 정도는 갖추는 것이 마땅한 때가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