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우선 SVB 파산의 가장 직접적인 원인으론 '빅스텝(기준금리 0.5%포인트 인상)'과 '자이언트 스텝(기준금리 0.75%포인트 인상)'이란 단어로 대변되는 미국 연방준비제도이사회(Fed·연준)의 고강도 긴축 정책을 꼽을 수 있습니다. 전세계적인 인플레이션을 잡기 위해 연준이 기준금리를 큰 폭으로 올리면서 SVB의 주고객인 테크 업체들이 자금난을 겪게 됐고, 결국 '돈맥경화'에 버티다 못한 이들이 '대량으로 예금을 인출(뱅크런)'해버리자 은행 곳간이 순식간에 텅 비면서 파산에 이르게 된 것입니다.
이 과정에서 돈줄이 마른 SVB가 손실을 감수하고 보유하고 있던 미국 국채를 매각한 것도 뱅크런을 더욱 부추긴 요인으로 작용했습니다. SVB가 지난 8일 보유자산매각 손실이 18억 달러 발생했다며 증자 추진 방침을 발표했고, 다음날 스타트업 업계 종사자가 많이 사용하는 업무용 메신저 '슬랙'을 통해 이 소식이 순식간에 전파되자 뱅크런이 본격화된 것입니다. 미국 캘리포니아주 금융보호혁신국이 SVB를 폐쇄하고 연방예금보험공사(FDIC)를 파산관재인으로 지정하기 불과 하루 전에 벌어진 일입니다.
문제는 SVB 파산으로 인한 여파가 미국 금융계를 넘어 전세계 금융시장으로 확산될 조짐을 보이고 있다는 점입니다. 캘리포니아주 금융보호혁신국의 SVB 폐쇄 조치가 있은 후 이틀 만인 12일에는 또다른 미국 상업은행인 시그니처은행이 문을 닫았고, 15일에는 대서양 건너 스위스에서 두 번째로 큰 투자은행(IB)인 크레디트스위스의 주가가 SVB 여파와 재무건전성 악화 문제로 장중 한때 30% 이상 폭락하며 전세계 금융시장이 출렁거렸습니다.
|
이에 바이든 대통령은 발끈했습니다. 그는 다음달 오전 백악관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출범한 오바마 행정부가 도입한 금융 규제를 트럼프 행정부가 완화한 게 SVB 파산의 원인이었다며 의회와 금융 당국에 은행 관련 규제를 강화토록 요청하겠다고 밝혔습니다. 이때 바이든 대통령이 트럼프 책임론을 거론하며 언급한 금융 규제는 2010년 제정된 '도드 프랭크법(Dodd-Frank Act)'을 말합니다.
법안 입안자인 크리스토퍼 도드 당시 상원 금융주택위원장과 바니 프랭크 당시 하원 금융서비스위원장의 이름을 따서 만들어진 도드 프랭크법은 자산 500억 달러 이상의 은행을 '시스템적으로 중요한 금융회사(SIFI)'로 분류하고 이들 은행에 대해 강화된 감독 기준을 적용한 것이 핵심 골자입니다. 특히 당시 오바마 행정부는 이 법을 통해 금융위기 상황에서 입을 손실을 측정하고 이에 대비해 충분한 자본을 축적했는지 평가하는 '스트레스 테스트'를 매년 실시할 것을 은행들에게 요구했습니다.
하지만 친기업 성향을 띠고 집권한 트럼프 전 대통령은 2018년 법을 개정해 대형은행을 제외한 나머지 중소·지역은행에 대한 규제를 대폭 완화했습니다. 당시 트럼프 전 대통령은 "중소·지방은행들을 대형은행들과 같은 방식으로 규제해서는 안 된다"며 규제가 적용되는 은행의 자산 기준을 500억 달러 이상에서 2500억 달러 이상으로 완화했습니다. 이에 따라 총자산 500억~2500억 달러 사이 은행들은 스트레스 테스트를 받지 않아도 된 것입니다.
비단 바이든 대통령의 반박이 아니더라도 현재 미국에선 트럼프 행정부 시절 규제 완화에 대한 아쉬움을 지적하는 목소리가 여럿 나오고 있습니다. 블룸버그통신은 SVB 등 미국 중소은행들의 잇따른 파산의 배경에는 트럼프 행정부 시절 감행한 금융규제 완화가 있다고 지적했습니다. 최근 캘리포니아와 뉴욕 금융당국에 의해 문을 닫은 SVB, 시그니처은행의 총자산 규모가 지난해 말 기준 각각 2090억 달러, 1103억 달러인 점을 감안하면 규제 완화에 대한 아쉬움은 더욱 클 수밖에 없을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