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위원회는 지난 1일 5대 금융지주 회장단에게 연말까지 95조원 규모 유동성 자금을 지원해달라고 요청했다. 시장 유동성 공급 확대 73조원, 기존에 예고한 채권안정펀드·증권안정펀드 참여자금 12조원, 지주 계열사 자금공급 10조원 등이 투입될 예정이다. 금융권에서는 채안·증안 펀드와 계열사 지원자금 등을 제외한 자금을 통해 기업대출 확대를 주문받았다고 본다.
문제는 은행들이 무턱대고 대출을 늘릴 수 없는 상황이란 점이다. 기업대출 규모가 이미 눈덩이처럼 불고 있기 때문이다. 신한·KB국민·하나·우리·NH농협 등 5대 시중은행의 기업대출은 지난달에만 15조원 이상 급증했다. 대기업·중소기업대출 모두 13개월 만에 증가폭 최대치를 기록했다. 기업대출은 10개월 연속 증가세를 유지하고 있다. 돈줄이 막히면서 은행에 대출을 받으려는 기업들이 몰리고 있는 것으로 분석된다.
코로나19 이후 기업 상환능력도 급속히 취약해지고 있다. 실제로 국내 기업들의 부채 상환능력을 평가하는 지표인 DSR(총부채원리금상환비율)은 2019년 37.7%에서 올해 1분기 39.7%로 2.0%포인트 늘면서 상환능력이 악화됐다.
여기에 미국 금리 인상으로 한국은행의 추가 금리 인상이 기정사실화됐다. 기업들의 자금조달과 이자 부담이 커질 전망이다. 이로 인해 금리가 빠르게 인상되면서 이자비용을 감당하지 못하는 한계기업이 늘 것으로 우려된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지난 9월 경기둔화, 대출금리 상승 등 경영 여건이 계속 악화될 경우 지난해 14.9%였던 한계기업 비중이 올해 18.6%까지 늘어날 수 있다는 전망이 나왔다.
기업대출을 늘려 유동성 지원을 해달라는 금융당국의 요청과 관련해 비판이 나오는 이유다. 은행권에선 부실 관리를 위해 대출 문턱을 높여야 하는 시기인데, 금융당국에선 오히려 낮추라고 요구하고 있기 때문이다. 지속적인 금리 인상으로 기업대출 부실이 커질 경우에 대비해 금융당국의 선제적인 묘책이 필요하다는 지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