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이 2차 세계대전 이후 최대의 난민 사태에 직면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오는 가운데 유럽연합(EU) 회원국들은 어느 때보다 기꺼이 난민을 받아들이고 있다. 곤경에 처한 이웃나라 국민을 돕는 모습은 훈훈하지만, EU가 난민에 취했던 기존 태도를 돌이켜보면 갑작스런 입장 변화가 낯설다.
지난해 10월 폴란드, 헝가리, 슬로바키아 등 EU 회원국들은 국경 장벽 설치 계획을 내놓고 EU 집행위원회에 비용 지원을 요청하는 등 난민 유입 방지 대책 마련에 열심이었다. 폴란드는 지난해 8월 난민 관련법을 제정해 자국 국경을 넘으려는 이주민과 난민을 즉각 추방하고 망명 신청을 거부할 통로를 마련하기도 했다.
하지만 우크라이나 난민에 대한 폴란드의 입장은 180도 달랐다. 전쟁 발발 이전부터 난민 수용 시설을 준비하고, 현재는 수용 한계를 넘는 규모의 난민을 받아들이고 있다. 유럽 일부 극우 정치인들도 우크라이나 난민 수용과 지원에는 적극 지지를 보냈다.
차별 대우는 비단 난민의 국적에만 그치지 않았다. 우크라이나를 탈출한 이들 가운데는 유학생, 소수민족, 영주권을 가진 외국인 등 유색인종도 대거 포함됐는데 이들 가운데 일부가 우크라이나 탈출 과정에서 버스 탑승을 거부당하거나 여권을 압수당하는 상황이 목격되면서 많은 공분을 샀다.
언론도 예외는 아니었다. NBC 방송의 한 기자는 “우크라이나 난민은 기독교인이고 백인이다. 우리와 많이 닮았다”고 소개하며 기존 난민들과 선을 긋는 발언을 하기도 했다.
3차 세계대전 가능성까지 점쳐지고 있는 가운데 그 어느 때보다 난민에 대한 관심과 지원이 뜨겁다. 하지만 난민은 이전부터 늘 존재해왔고 지금 이 순간에도 정착하지 못하고 있는 이들의 수가 9500만명에 달한다.
전쟁의 피해자들은 국적·인종·종교에 관계없이 평등하게 보호 받고 인간다운 삶을 영위할 권리가 있다. 전쟁으로 드러난 불편한 현실을 마주하고 있는 지금이야 말로 도움이 필요한 이들에게 ‘급’을 따지는 ‘갑질’을 하고 있지 않은지 고민해야 할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