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타까운 건 전날(27일)이 이 회장 취임 2주년이라는 사실이다. 취임 3년차 첫날 공식 일정이 경영현장이 아닌 서초동이란 현실이 지금 이 회장과 삼성이 처한 상황이다. 이 회장은 2022년 회장 승진 당일에도, 취임 1주년인 지난해에도 재판에 출석해야 했다.
99번째 재판에 출석한 이 회장의 모습이 사뭇 더 엄중하게 다가오는 건 작금의 삼성 상황 때문이다. 삼성은 지금 위기다. 반도체 사업 총괄 수장이 사과문을 내면서 위기는 '공인된 사실'이 되어 버렸다. 그것도 26만7800명의 삼성 임직원들만의 위기도 아니다. 이제는 대한민국 모두가 삼성의 위기를 걱정하는 지경이다.
당장 400만명이 넘는 소액 주주들의 한숨이 짙다. 삼성전자 주가는 지난해 8월부터 꾸준히 하락해 어느덧 '5만 전자'에 머물고 있다. 외국인의 이탈과 강달러 현상이 맞물리면서 주가가 오를 것이란 기대보다 더 떨어지지 않을까 하는 걱정이 앞선다.
정부 고위인사나 정치인들도 마찬가지다. 대통령실 과학기술수석이 삼성을 걱정하고, 삼성을 적대시 해왔던 야당 정치인들도 이제는 삼성을 응원하고 있다. 박지원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이 회장의 재판으로 대한민국의 경제인라고 할 수 있는 삼성전자의 최근 개혁·혁신에 뒤늦어지고 있다며 "사법부도 우리 기업들이 국민 미래 먹거리를 통해서 세계시장을 석권할 수 있는 계기, 대한민국 경제에 기여할 수 있는 기회를 만들어 줘야 한다"고 강조했다. 한 때 삼성 저격수로 이름을 날렸던 박용진 전 의원도 삼성을 응원하기 위해 삼성전자 주식을 샀다고 한다.
모두가 삼성의 위기를 걱정하지만, 당사자인 이 회장과 삼성 입장에선 뾰족한 수가 별로 없다는 게 문제다. 7년 가까이 이어지는 사법리스크의 족쇄가 삼성의 위기를 불러온 핵심 원인 중 하나라는 건 주지의 사실이다. 사법 영역과 경영 영역을 구분해 대응하면 좋겠지만, 장삼이사도 그게 말처럼 쉽지 않다는 건 잘 안다. 특히나 지금처럼 엄중한 위기를 맞았을 때 사법리스크 족쇄는 더 무겁게 느껴질 수 밖에 없을 것이다.
그 족쇄를 채운 건 검찰이다. 1심 법원은 무죄를 선고했지만 검찰은 1000장의 항소장을 준비해 재판을 이어갔다. 삼성이 멋지게 위기 탈출을 했으면 하는 바람이지만, 족쇄의 무게가 버겁다는 생각이 드는 건 왜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