닫기

[양원근 칼럼] 금융의 ‘삼성전자’ 가능한가?

기사듣기 기사듣기중지

공유하기

닫기

  • 카카오톡

  • 페이스북

  • 트위터 엑스

URL 복사

https://biz.asiatoday.co.kr/kn/view.php?key=20240424010013276

글자크기

닫기

 

승인 : 2024. 04. 24. 19:09

20240321010012560_1711267561_1
양원근 前 KB금융 부사장·경영학 박사
2000년대 중반 삼성전자가 반도체 제조로 세계시장에서 두각을 나타내기 시작했다. 이때 우리 금융사도 글로벌시장을 무대로 선전하는 기업이 될 수 있을까 기대가 컸다. 당시 홍콩과 싱가포르가 중국, 아시아 및 세계 자금의 조달과 운용의 거점으로 자리 잡으며 쑥쑥 크고 있었다. 반면에 일본은 버블붕괴에 따른 후유증으로 금융기관들이 경쟁력을 발휘하지 못했고 구조개편을 겨우 마무리했다. 이 때 정부는 서울을 동북아 금융허브로 육성하는 계획을 세우고 금융기관의 해외진출을 독려했다. 금융은 고도의 전문직 일자리를 창출하고 부가가치가 매우 높은 산업이며 법률, 컨설팅 등 산업 연관효과도 크다. 대부분의 선진국에서 제조업이 성숙단계로 들어서 성장률이 떨어지면 금융산업이 가파르게 성장하며 국부창출에 큰 역할을 했다.

약 20년이 지난 현재 싱가포르는 국제 금융허브로서 위상을 드높이고 있으며 일본은 BIG3 메가뱅크 체제로 구조를 재편한 뒤 전 세계 금융시장에서 맹활약하고 있다. 반면 홍콩 금융산업은 중국으로 행정체제 편입 이후 규제강화, 중국의 부동산시장 붕괴 및 경기침체, 미국과 중국의 대립 등의 영향으로 크게 위축되었다. 심지어 '금융허브의 유적지'라는 평가를 받는 형편이다.

동북아 금융의 대표적 허브 역할을 했던 홍콩의 쇠락은 우리 금융 산업에 기회다. 그러나 최근 금융산업에 대한 기대는 쑥 들어가고 불완전상품 판매와 고객, 정부와의 소송만 기억되는 상황에 처했다. 금융의 삼성전자 꿈은 더 이상 논의나 기대조차 없다. 대표 금융기관들의 신뢰는 크게 떨어진 상태다.

역사적으로 금융산업의 해외진출은 그리 성공적이지 못했다. 1997년 외환위기 전 종합금융사 등 많은 금융사들은 홍콩에 지점을 설립하고 달러를 기반으로 비즈니스를 했다. 단기로 조달된 달러를 동남아국가에 장기로 운용했다. 결과적으로 달러부족을 가져와 외환위기 발생에 중요한 단초가 되었다. 2008년 글로벌 위기 전에도 금융사들의 해외진출 활동이 커졌으나 국내은행의 카자흐스탄 은행 인수가 대규모 손실로 막을 내리며 열기가 꺼졌다. 최근 금리하락기에 증권사 금융지주 등의 선진국 상업용 부동산투자, 동남아 은행 인수 등이 이루어졌으나 금리가 다시 급상승하며 어려움을 겪고 있다.
금융의 해외진출은 그 나라의 역사, 문화 및 통화의 안정성 등과 밀접한 연관성을 갖는다. 스페인의 산탄데르 은행은 1986년 보틴 회장이 취임하며 해외진출을 성장전략으로 채택했다. 조상들이 정복했던 남미 지역을 중심으로 1990년 이후 130여 개 은행을 합병하며 글로벌 은행으로 우뚝 섰다. 유럽의 강소국인 스위스는 1, 2차 세계대전 당시 중립국을 표방하여 금융자산의 안전성과 고객 비밀유지를 앞세워 글로벌 금융시장을 공략했다. SBC, CS, UBS 3대 대형 글로벌 은행을 키워냈다. 현재 SBC, CS는 UBS로 흡수합병되어 글로벌 시장에서 영향력을 유지하고 있다.

일본의 금융산업을 보면 그 성장과 발전, 변신에 놀라움을 금할 수 없다. 1990년대 초 일본 은행들의 자산규모는 세계 최고 수준이었으나 리스크 관리 등 내부경영은 글로벌 스탠더드에 한참 떨어지는 상태였다. 부동산 담보대출, 대기업 대출 중심이던 일본의 은행들은 10여 년간 손실을 내는 천덕꾸러기였다. 1997년 독점금지법이 개정되어 금융지주사 설립이 가능해지며 일본정부는 대형화, 전문화를 목표로 일본 은행산업을 재편했다. 은행 등 금융 산업은 생산물이 유사하기 때문에 대표적으로 규모의 경제가 존재하는 산업이다. 지방은행을 제외한 은행을 BIG3 메가뱅크 체제로 유도하고 해외진출 등을 독려했다.

2000년대 초반 미쓰비시은행과 도쿄은행 등 6대 은행이 여러 단계의 합병과정을 거쳐 미쓰비시 UFJ금융그룹이 되었다. 사쿠라 은행과 스미토모 은행이 합병해 탄생한 SMBC, 다이이치 강교, 후지은행, 니혼고교 은행이 합병해 만든 미즈호 금융그룹 등 BIG3 메가뱅크 체제가 만들어졌다. 현재 일본 메가뱅크의 수익은 전통적인 소매금융이 40% 수준으로 작아졌고, 자금조달 및 운용 등 도매금융, 글로벌경영, 외환 등 비이자 수익 등으로 다양하게 구성되어 있다. 특히 아시아, 북미, 유럽, 남미 시장에 골고루 진출해 대형 프로젝트의 자금조달에 역량을 보여주고 있다.

국내 대표적인 5대 금융지주의 경우 수익의 은행 의존도가 70~80%로 높고 은행의 비(非)이자 수익비중은 10%대에 머물고 있다. 국내 소규모 소매시장에 5대 금융지주사가 경쟁을 하고 해외진출을 할 때도 현지에서 국내 금융사들 간에 경쟁을 한다. 비이자수익 비중을 늘리고자 하는 의욕은 크다. 그러다 보니 검증이 덜되었거나 잠재된 리스크가 큰 금융상품을 고객들에게 팔아 고객의 신뢰는 떨어지는 악순환에 빠져 있다.

국내 은행들이 해외시장을 개척하는 데 불리한 여건이 많다. 특히 변동성이 큰 환리스크 관리에 어려움이 크다. 일본의 경우에는 2000년 이후 경상수지 흑자로 벌어들인 외화의 약 절반만 보유고에 쌓여있고 약 절반은 기업 및 개인이 보유하고 있다. 따라서 외화예금 수신 기반이 넓다. 외환위기에 항상 대비해야 하는 우리로서는 불가능한 구조다. 글로벌 시장에서 외화의 조달과 운용을 하려면 환리스크를 흡수할 수 있도록 은행규모를 더 키울 필요가 있다.

현재 강소국인 한국은 비슷한 규모의 5대 금융지주 체제를 갖고 있다. 상장되지 않은 농협금융을 제외한 KB, 신한, 하나, 우리 등 4대 금융지주의 시가총액을 모두 합해도 하나의 일본 메가뱅크 절반에도 미치지 못한다. 또한 변동성이 큰 주택 등 부동산 담보대출에 영업이 치우쳐 있으며 해외영업 비중도 작고 국내에서 비이자 수익비중을 키우려는 전략은 성공하지 못하고 있다. 금융의 '삼성전자'로 가는 길은 어디에서 물꼬가 터질까? 정책과 전략에서 크고 담대한 전환이 요구되는 시기다.

양원근 前 KB금융 부사장·경영학 박사

※본란의 칼럼은 본지 견해와 다를 수 있습니다.

ⓒ 아시아투데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기사제보 후원하기

댓글 작성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