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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유니콘의 뿔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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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 2024. 04. 18. 11:12

이황석 문화평론가
리들리 스콧 감독의 SF영화 '블레이드 러너'는 후대 재평가를 통해 고전의 반열에 오른 작품이다. 대중의 호불호는 갈리겠지만, 적어도 평단에선 이의를 제기하는 이는 없어 보인다. 사이버펑크 영화의 효시로서, 기존 SF 장르의 낙관적 미래관을 뒤집고 과학 문명의 이면 그대로의 모습을 담은, 영화의 디스토피아적 관점은 소설, 웹툰 그리고 게임에 이르기까지 후대 많은 SF 장르 세계관에 영감을 주었다.

이를 증명이라도 하듯 2017년, 명장의 반열에 오른 드니 빌뇌브 감독이 '블레이드 러너 2049'를 발표했다. 전작의 세계관과 미장센을 최대한 존중하면서도 빌뇌브는 자신만의 독특한 색채를 입혀 나갔다는 평가를 받았다. 그런데 흥미로운 것은 블레이드 러너 2049의 개봉으로 인해 리들리 스콧의 전작에 관심이 증폭됐다는 점이다. 많은 리뷰들이 일종의 비교문학 관점에서 전작과 후작의 세계관 계승과 변화에 초점을 맞췄다. 이러한 현상은 전작의 뛰어남을 다시 한번 더 확인하는 계기가 됐다.

각설하고 블레이드 러너엔 개프라는 독특한 캐릭터가 등장한다. 탈출한 리플리컨트(복제인간)들을 쫓는 블레이드 러너 데카드의 동료인 개프는 감시자처럼 보인다. 딱히 하는 일 없이 데카드의 주변을 맴돈다. 마치 단역처럼 배역이 세팅되어 있지만, 그는 서사 전개에 있어서 매우 중요한 인물이다. 그가 등장하는 신마다 개프는 종이접기를 한다. 주변에 있던 메모지나 담배 은박지를 이용해 뭔가 솜씨 좋게 피규어를 뚝딱 만들어낸다. 그러고 나선 아무렇지도 않게 탁자 위에 올려놓곤 자리를 떠난다. 카메라의 잡힌 종이 피규어의 형상은 새의 다리, 인간 그리고 유니콘이다.

유니콘은 도상학적인 관점에서 가톨릭의 삼위일체 신앙을 상징한다. 유니콘의 외뿔은 유일한 신, 성부 야훼에 대한 아이콘이다. 그리고 하나뿐인 뿔은 중병을 고치는 영묘한 약으로 사용되기에, 자기를 버림으로써 희생한 성자 그리스도를 의미한다. 마지막으로 하얀색의 유니콘은 순결성을 상징하는데, 이는 마리아의 영성으로 대변되는, 사랑을 실천하는 주체로서 교회의 성령을 은유한다. 이로써 유니콘은 삼위일체 가톨릭교회의 상징성을 부여받게 된다.
한편 극 중 탈출한 4명의 리플리컨트는 소수자성을 대표하는데, 생사가 오가는 전장에서 그들은 용병, 노동자, 암살자, 성노예로 착취당하다가 탈출을 감행한다. 이들 모두는 쓰고 버려지는 소외된 자들로 대변된다. 그들에게 허락된 시간 역시 4년에 불과하다. 그 의미는 더욱 분명해 보인다. 당대 급격한 경제위기에 빠진 미국에서, 고용의 유연화라는 명목으로 퇴출당하는 피지배계급을 상징한다. 이들은 자신을 만든 아버지, 타이렐 사의 회장 Dr. 엘든 타이렐를 찾아와 생명 연장을 요구하지만, 그 뜻을 이루지 못한다.

이 중에 대장 격인 로이는 특별한 인물이다. 선악의 경계가 모호한 로이의 캐릭터는 궁극엔 유니콘의 상징성을 구현하고 있다. 사실 유일신에 대한 복종은 역설적으로 불복종성을 내포하고 있는데, 내가 믿는 신 이외에 어떤 부당한 외압에도 무릎을 꿇지 않겠다는 의지의 발현이 유니콘 뿔의 제1 상징이다. 그리고 희생 제의의 번제물인 네 명의 소수자성을 대변하는 인물이 바로 로이다. 그리고 로이는 자신을 죽이려는 블레이드 러너 데카드를 오히려 죽음에서 구해내고 자신은 생명을 다한 채 숭고한 죽음을 맞이한다. 이로써 구원자로서 예수의 상징성은 로이의 캐릭터에 전유된다.

그러나 블레이드 러너는 종교에 관한 영화가 아니다. 그 모티브를 원용한 인간성의 구원과 인류애에 관한 영화다. 로이의 희생으로 새로 태어난 데카드는 또 다른 리플리컨트 레이첼과 마침내 사랑을 확인하고 탈출을 감행한다. 이 마지막 장면에 등장하는 것이 유니콘이다. 로이와 데카드 그리고 레이첼로 전이된 유니콘의 상징성은 부당한 권력에 대한 불복종성을, 타인을 위해 기꺼이 목숨을 던지는 희생정신을 그리고 마지막으로 숭고한 사랑의 실천으로서 인류애를 압축하고 있다.

그런데 우리가 직면한 현실에 이와 같은 유니콘의 뿔에 대위 되는 사람이 있다. 박정훈 대령이 바로 그다. 부정의에 맞서 스스로 어려운 길을 선택한,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는 그는 유니콘이다. 시민사회는 그가 걷는 길에 함께해야 한다. 연대라는 성스러운 실천이 따라야만 유니콘 뿔의 상징성은 비로소 완성된다.

/이황석 문화평론가·한림대 교수(영화영상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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