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투데이 대기자 |
그런데 이런 표현이 의료계에서 오간다면 어떨까. 언젠가 여의도에 있는 한 의원을 찾았다. 신장개업해 페인트 냄새가 채 가시지 않는 곳이었다. 요즘 젊은 층의 입맛을 잔뜩 반영한 듯 분위기 좋은 카페처럼 꾸며놓았다. 아늑한 그 분위기가 싫지는 않았다. 그 분위기에 맞는, 패기 넘쳐 보이는 30대쯤 의사랑 마주 앉아 증상을 얘기하고 처방을 받으려 하고 있었다. 의사 옆 개업 축하 화분에 달린 리본에 눈길이 갔다. '여의도 돈 싹 쓸어 담기를…' 깜짝 놀랐다. "여기가 증권사 객장인가."
젊은 의사에게 물었다. 그 의사는 스윽 웃으면서 이렇게 얘기했다. "친구가 보낸 것인데 장난기가 좀 많이 담겼다." 대수롭지 않게 넘겼다. 오히려 그 문구를 인지한 필자를 살짝 이상한 눈빛으로 쳐다봤다. 약 처방을 받고 카페 같은 그 의원을 나섰다. 기분이 묘했다.
꽤 오래전 멕시코 수도 멕시코시티를 취재차 방문했다. 거대한 멕시코국립박물관 앞에서 쉬고 있는 50대 남성에게 말을 걸었다. 직업이 뭐냐고 물었고, 의사라는 답이 돌아왔다. "돈 많이 벌겠다"는 질문에 "무슨 말인지 모르겠다. 의사가 돈을 어떻게 많이 버느냐"고 답변했다. 한국에서는 의사가 개업을 하면 많은 돈을 벌게 된다고 했더니 "의사가 돈을 많이 버는 사회는 잘못된 사회"라고 되받아쳤다.
개업의를 하고 있는 한 의사는 요즘 밤잠을 설친다고 푸념했다. 이유는 돈이다. 수십 명의 직원들 월급 주는 일이 결코 쉽지 않다고 했다. 개업 때 대여한 리스 의료장비 상환금도 만만치 않다며 편히 잘 수 없다고 우울해했다. 40대 치과의사도 10명도 안 되는 직원 월급을 주려면 환자들이 많아야 한다고 말했다. 환자들이 몰려오는 날은 기분이 좋고, 없는 날은 우울해진다고 덧붙였다.
지금 우리 사회는 의대 정원 확충이라는 난제 앞에 놓여 있다. 정부가 의대 정원을 대폭 확충한다는 획기적인 뉴스를 들은 지 얼마 지나지 않아 전국 40개 의과대학을 대상으로 의대 정원을 얼마나 늘리는 게 좋겠느냐는 정부 조사가 진행됐다. 그 결과 오는 2025년 대입 희망 의대 증원 규모가 현 의대 정원에 맞먹는 최소 2151명에서 최대 2847명에 이르는 것으로 나타났다. 2030년 입시 증원 희망 규모는 최대 3953명에 달하는 것으로 조사됐다. 동시에 국민 82.7%가 의사 인력 확충을 위해 의대 정원을 늘려야 한다는 보건의료노조의 설문조사 결과도 나왔다. 정부는 당초 1000명 정도 증원 계획을 세운 것으로 알려졌었다. 숫자가 어디에서 무엇을 근거로 한 것인지 분명하지는 않지만, 의대 정원 확대를 염원하는 의료인들과 국민이 많다는 것은 엄연한 현실이다.
의대 정원 확충에 앞서 의료 행위의 본질이 과연 어디에 있는지, '돈'에 있는 것은 아닌지 되짚어 보는 냉철함이 의료계에 필요하다. 히포크라테스 선서라는 걸 마음속 깊이 간직하고 의료 현장에 나서도록 하는 훈련은 의대에서 충실히, 지속적으로 이뤄지고 있는지도 점검해 봐야 한다. 우리나라 진료과가 감기과, 통증과, 피부과 등 3개밖에 없다는 일부 의료인 사이의 자조 섞인 얘기에 의료인이 자문자답해야 할 때다.
지금도 촌각을 다투는 응급환자들을 돌보느라 여념이 없는 의사들이 숱하다. 오로지 환자 치료에 최선을 다하는 그들의 숭고한 의료 행위에 아낌없는 찬사를 보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접하게 되는 일부 의료인의 '돈 지향' 성향에는 불편한 심기를 감추기 힘들다. 의대 정원 확충 결정을 앞두고 의료인과 정부, 그리고 청소년과 부모는 과연 이 땅의 의료 행위를 어떤 시각으로 바라보고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