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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준선 칼럼] 좌파 포퓰리즘과 결별해야 미래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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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 2023. 10. 09. 18:13

최준선 성균관대 법학전문대학원 명예교수
최준선 성균관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명예교수
포퓰리즘을 정의하기는 어렵다. 『포퓰리스트의 설득: 미국사』(The Populist Persuasion-An American History)를 쓴 조지 타운대 마이클 카진 교수가 말한 대로 포퓰리스트로 불리는 사람이나 그 운동, 또는 정당을 배타적으로 정의할 만한 일련의 특성은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일본 지바대학 법정경학부 미스지마 지로 교수는 그의 저서 『포퓰리즘이란 무엇인가』(이종국 번역)에서 포퓰리즘을 '고정적인 지지 기반을 넘어 폭넓게 국민에게 직접 호소하는 정치 스타일' 또는 '국민의 입장에서 기성 정치나 엘리트를 비판하는 정치 운동'이라고 정의한다.

포퓰리즘을 실현하기 위해 투쟁하는 자들이 포퓰리스트다. 연구자들은 포퓰리스트를 좌우로 나누는데, 보통 도널드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을 '우파 포퓰리스트'로, 2016년 미국 대통령 선거 민주당 경선 후보 버니 샌더스 같은 이를 '좌파 포퓰리스트'로 구분한다.

우파 포퓰리스트들은 '사회 엘리트가 제3그룹을 지나치게 보호하고 편애한다'고 공격하면서, 이에 반대해 제3그룹에 속하는 집단을 적대시해야 한다고 선동하는 것이 주특기다. 제3그룹이란 인종, 종교, 외국인 등의 기준에 따라 구분되는 특정 집단을 말한다. 히틀러, 무솔리니, 트럼프, 프랑스의 르펜과 같은 카리스마 있는 선동가가 대표적 우파 포퓰리스트다. 한국에는 이민자가 많지 않고 종교적 차별도 거의 없어서 우파 포퓰리스트의 활동이 미약하다. 한국에서는 좌파 포퓰리스트가 문제다.

좌파 포퓰리스트란 의료보험 확대, 무상 대학교육, 높은 최저임금, 기본소득 지급 등을 주장하면서 노동자, 영세 자영업자, 대학생, 빈곤층을 위해 싸우는 사람을 말한다. 싸우는 가장 중요한 이유는 선거에서 표를 얻기 위한 것이다. 대통령 선거든 국회의원 선거든, 한 번 선출직에 오르면 막강한 권세와 이권이 따라와 자연스러운 '이권 카르텔'을 구축할 수 있기 때문이다.
좌파 포퓰리스트는 '엘리트 또는 기득권자'와 '국민'을 갈라치기 하여, 양자 간의 기본적인 적대감을 정치의 핵심으로 상정한다는 점에 있어 모든 연구자들의 견해가 일치한다. 엘리트(최상류층)를 자기 잇속만 차리는 비민주적 족속이라고 간주하고, 보통사람들은 그 엘리트에 대항하도록 결집시키려 책동한다.

존 주디스는 『포퓰리즘의 세계화』(오공훈 번역)에서 포퓰리스트 운동의 특징을 날카롭게 관찰했는데, "포퓰리스트 운동은 종종 그 자체로 목적을 이루지 않아도 좋다고 생각하기도 한다. 그들의 운동이 반드시 성공할 필요는 없다고 여긴다. 의료보험 제공, 글로벌 자본주의나 유럽연합으로부터의 보호 등의 목적을 달성하지 못하더라도 상관없이 혼란 그 자체를 목표로 하기도 한다"고 말했다. 정권만 잡고 이권만 챙기면 되기 때문에 국민을 선동해 현혹하면 되는 것이지 결과에는 연연해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들이 엘리트나 기득권층에 맞서는 국민(인민)을 위해 싸우지만, 이들은 계급투쟁이나 자본주의의 폐지를 추구하지도 않기 때문에 대중으로 하여금 위험하지 않다는 느낌을 갖게 만든다. 미국 젊은이들이 좌파 정치인 샌더스를 지지한 이유는 미국 젊은이들이 소비에트 공산주의가 아닌 유럽 사회민주주의를 동경한 때문이라는 것이다.

존 주디스는 포퓰리스트의 기반은 아주 가난한 사람들이 아니라 오히려 중산층이라고 한다. 중산층이 포퓰리스트의 타깃이 되는 이유는 최하층민으로 추락할 수 있다는 두려움 때문에 아주 궁핍하게 생활하는 사람들보다도 훨씬 더 정치적으로 변덕스러운 집단이 된다는 것이다.
민주주의는 포퓰리즘과 공생할 수밖에 없는 속성을 가지고 있다. 『아메리카의 민주주의』(이용재 번역)를 쓴 알렉시스 드 토크빌은 미국의 민주주의를 부러워하면서도 민주주의가 중시하는 다수결 투표제도에서 다수의 횡포와 이에 따른 입법·행정의 불안정, 정치인의 포퓰리즘화라는 민주주의 자체에 내재된 위험도 함께 지적했다.

미스지마 지로는 포퓰리스트를 '민주주의라는 분위기 있는 파티에 출현한 취객'에 비유하기도 한다. 취객은 "눈살을 찌푸리게 하는 존재"이지만 "서슴없이 '금기'를 파고들어 숨겨진 기만을 폭로하는 존재"이기도 하다는 점에서 긍정적인 면도 있다는 것이다. '내부의 적'이기도 하다. 한국에서도 좌파 포퓰리스트 전직 국회의원이 우파의 탈을 쓰고 윤석열 대통령의 행보에 대해 야당보다 더 모욕적인 비판을 하면서, 적인지 아군인지 구분이 되지 않는 궤변을 쏟아내곤 한다. 찌질해 보이고, 스스로 무덤을 파는 것처럼 보이는데, 아마도 본인만 모르는지 한 치 틈만 보이면 여전히 헛되이 찔러댄다. 포퓰리스트는 조금 긍정적인 면이 있지만 부정적인 역할이 더 크기 때문에 배척해야 할 대상이다.

포퓰리스트는 자신이 주장하는 모든 복지제도를 실현할 돈을 조달할 길이 없기 때문에, 결국 특정 계층의 자원·노동에서 오는 가치를 빼앗아 다른 특정 계층에게 이전할 수밖에 없고, 특정 계층의 국민에게 약탈 내지 강탈 수준의 세금을 징수할 수밖에 없다. 사회적 약자를 배려하는 것은 공동체의 임무지만, 이런 약탈행위가 민주적이라고는 할 수는 없다. 포퓰리즘의 확산을 막으려면 모든 국민이 평등하다고 느껴야 하는데, 이것은 실현 불가능한 목표다. 차선으로 계층 간 이동이 자유로우면 불평등이 줄어든다. 윤석열 정부가 말하는 불공정의 상징인 '이권 카르텔 혁파'도 바로 이를 목표로 한다.

포퓰리스트는 미래를 희생해 현재를 보다 풍요롭게 만들자고 꼬드긴다. 속으면 안 된다. 누가 포퓰리스트인지 가려내야 한다. "더럽고 추한 정치 지도자가 다스리게 되는 것은 그런 사람을 뽑을 수밖에 없었던 국민들의 착각에서 나온 것이 아니라, 그들의 수준에 맞는 인물을 골라낸 것일 뿐이다"(아르투어 쇼펜하우어, 『사랑은 없다』, 이동진 번역).

※본란의 칼럼은 본지 견해와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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