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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한·미 핵협의 그룹(NCG) 출범을 계기로 한국, 더 나아가 아시아에 제공되는 확장억제가 나토 모델로 접근하는 것은 아닌가 하는 평가가 나온다. 물론 미국의 전술핵이 우리 영토에 재배치 될 일은 없으니 나토식 모델로 규정하기는 어렵다. 그러나 아시아적 확장억제 모델이 2010년대 나토 내부에서 논의되었던 '핵무기의 전진 배치 없는 핵공유'로 진화할 가능성은 여전히 열려있다.
'핵무기가 우리 땅에 없는데 어떻게 핵이 공유될 수 있느냐'는 반문이 가능하다. 나토식 핵공유 모델에서 전술핵이 배치된 것만 중요한 게 아니다. 핵심은 4가지다. 핵 관련 정보공유, 핵 사용 협의체계, 공동 핵기획, 핵 작전의 공동실행이 그것이다. 군사과학기술의 진보는 핵을 운용하는 전략자산의 '작전 운용성'을 향상시킨다. 특정 국가에 전술핵 배치 유무는 그다지 중요한 고려사항이 아니다. 무기체계의 발전을 통해 2010년대 나토에서 '핵무기 전진 배치 없는 핵공유' 논의가 활성화됐고, 최근 우리도 핵공유 개념의 확장을 논의할 수 있게 됐다.
한·미 NCG 출범, 전략핵잠수함(SSBN)의 부산 기지 입항 등 최근 미국의 확장억제 정책에 의미 있는 변화가 두드러지게 나타나고 있다. 이를 사실상의 핵공유로 볼 여지도 있다. 물론 미국이 이에 대해 선을 긋는 듯한 입장을 보였다. 그러나 놀랍게도 앞서 언급한 핵공유의 4가지 핵심분야 모두가 '워싱턴 선언'에 명시돼 있다. 미국이 '공유'가 아니라고 해도 아시아적 확장억제 모델에서 핵 관련 요소의 비중이 증가할 수밖에 없어 보인다. 그것을 사실상의 핵공유라고 특정하지 않는 것은 다른 셈법이 있기 때문이다. '외교와 대화'라는 카드가 여전히 유효하기 때문이다. 우리도 그 카드를 염두에 두고 있기 때문에 '미국의 선 긋기'에 조급해 할 필요는 없다.
앞으로 미국은 아시아에서 핵공유의 핵심기제를 동맹국과 함께 할 것이다. 중국은 '강군몽' 실현을 위해 2035년까지 현재보다 4배에 달하는 1500발의 핵탄두를 보유할 것이라는 전망이 있다. 북한 또한 핵·미사일 위협을 고도화할 것이기 때문에 한·미동맹의 전략적 선택은 합리적이다.
최근 북한이 기괴한 잠수함을 선보였다. 무척 불안해 보이는 디젤 잠수함으로 핵 선제타격을 하겠다고 공언한다. 북한 정권이 이렇게 나온다면 워싱턴 선언의 성과에도 불구하고 우려의 목소리가 나올 수 있다. 리온(Lyon)의 표현대로 미군의 전략 폭격기가 필요 시에만 '날아왔다 돌아가는 방식'(fly-in, fly-out)으로는 우리 국민의 우려를 불식시킬 수 없다. 따라서 전술핵 재배치나 자체 핵무장 없이도 '사실상의 핵공유' 메커니즘이 상시적으로 작동되고 있음을 설명하고, 이를 정책홍보에 활용할 필요가 있다.
10여 년 전 유럽의 논의도 소개하고, 아시아적 확장억제 모델에서 핵 관련 요소가 빠르게 보강되고 있다는 것도 알려야 한다. 정작 중요한 것은 핵공유의 4가지 핵심분야의 발전 방향을 정립하고 때로는 속도감 있게, 때로는 신중하게 추진하여 국민적 우려를 불식시키는 것이다. 우크라이나 전쟁 장기화 및 미·중 전략경쟁 격화 등 전략 상황과 '핵기반 한·미동맹의 결속력'을 고려할 때, 아시아적 확장억제 모델에서 핵 관련 요소의 중요성은 명확해졌다. 확장억제의 신뢰성과 실효성을 어떻게 고도화할 것인지 고민할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