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산편성권은 우리나라 헌법이 규정하고 있는 정부의 고유 권한이다. 헌법 54조는 예산을 심의하고 감액할 수 있는 권한만을 국회에 부여하고 있다. 국회가 자신들의 입맛에 맞게 예산을 끼워 넣지 못하도록 선을 그어놓았다. 굳이 삼권분립이라는 표현을 쓰지 않더라도, 정권을 위임받은 정부가 안정적으로 국가를 운영할 수 있도록, 국회는 '동반자적 견제자'를 넘어서지 말 것을 분명히 하고 있다.
물론, 국민을 위하는 일에 여야가 따로 있을 수 없고, 국회와 정부가 따로 있을 수 없다. 하지만 굳이 우리 헌법에서 삼권을 엄격히 분리하는 것은 어느 한쪽 권력이 지나치게 비대해지면 민주주의의 근간이 흔들리고, 결국 독재로 빠질 수 있기 때문에 이를 막기 위한 것이다. 박 원내대표는 어제 정부의 새 예산안을 "윤석열 정권의 사적 가계부"로까지 폄하했다.
우리 헌정사에서 국회가 예산 수정안을 단독으로 제출한 사례는 단 한 번도 없다. 헌법 57조는 국회가 예산 수정안을 만들 수는 있지만 반드시 정부의 동의를 거치도록 하고 있다. 민주당이 단독으로 수정안을 제출한다면 당연히 원인무효로 위헌이다. 민주당도 이 조항을 모를 리 없다. 이 때문에 정진석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은 "민주당이 예산을 볼모로, 민생을 볼모로 이재명 대표의 사법 리스크를 물타기 한다"고 비판했다.
민주당은 오늘(9일) 끝나는 정기국회에서는 예산안을 처리하지 않을 심산으로 다시 임시국회 소집을 요구한 상태다. 연말까지도 예산안이 통과되지 않으면 윤 정부는 당분간 제2의 문재인 정부로 지낼 수밖에 없다. 이는 진정으로 국민들이 원하는 것이 아닐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