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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탈리아 산레모 가요제가 그래미 어워드에 던져주는 시사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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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덕희 밀라노 통신원

승인 : 2021. 03. 21. 09:52

보수적인 이탈리아에서도 사회 변화 받아들여, 개방적이라고 자부하는 미국에서도 이제는 받아들여야
마네스킨
올해의 수상자 마네스킨이 포즈를 취하고 있다./사진=산레모 가요제 공식 홈페이지 캡처
지난 14일(현지시간) 미국 그래미 어워드 시상식 결과를 두고 논란이 일고 있다. 지난해 초 발매한 정규 4집 ‘애프터 아워스’와 수록곡 ‘블라인딩 라이츠’ 등으로 올해 차트를 휩쓸었다고 과언이 아닌 위켄드는 후보에 이름을 올리지도 못 했다. 또 지난해 8월 발매한 싱글 앨범 ‘다이너마이트’로 역시 각종 기록을 경신하고 미국에서 디지털 앨범 판매 순위 1위에 오른 방탄소년단(BTS)이 ‘베스트 팝/듀오 그룹 퍼포먼스’ 부문에 노미네이트 되었으나, 정작 상은 이들에 비해 실적이 차이가 많이 나는 레이디 가가와 아리아나 그란데의 ‘레인 온 미’에게 돌아갔다.

물론 그래미 어워드가 그 권위를 가지는 것은 대중성이 아닌 음악성에 집중하기 때문이다. 1959년부터 아티스트, 작사가, 제작자 등 음반업계 종사자들로 구성된 미국 레코드 예술과학아카데미(NARAS)가 투표를 통해 수상자를 결정한다. 문제는 주로 백인 남성인 회원들로 구성된 이 곳에서 자신들이 선호하지 않는 장르나 인종을 차별하는 보수적인 면모를 보인다는 점이다.

비슷한 시기에 탄생해 이탈리아 최고의 권위를 자랑하는 ‘산레모 가요제’의 수상자 선정방식의 변화를 살펴보면 그래미 어워드에 시사점을 던져줄 수 있을 듯하다.

산레모 가요제 (Festival di Sanremo)는 1951년 리구리아 주의 작은 해안 도시 산레모에서 시작됐다. 1953년부터 방청객뿐만 아니라 라디오 구독자들의 투표도 받기 시작했고, 1955년에는 투표 참가자들의 연령과 성, 그리고 사회적 계급의 균형을 맞추기 시작했다. 1972년 다시 선정 방식에 변화가 있었다. 투표 참가자들을 세 그룹으로 나눈 것이다. 첫 번째는 전화 투표 참가자, 두 번째는 군대나 양로원 같은 각기 다른 사회 구성원, 마지막은 현장에 참가한 청중들이다. 현재는 방청객 33%, 음악 전문 평론가 33%, 전화투표 34%의 비중으로 결과를 산정하고 있다.
이렇게 수상자 선정방식을 시대에 따라 자꾸 바꾼 이유 중 하나는 수상 결과와 흥행성적이 일치하지 않은 경우가 종종 있었기 때문이다. 1983년 바스코 로씨 (Vasco Rossi)의 곡 ‘무모한 삶(Vita Spericolata)’은 참가자 중 최하위에 머물렀지만, 그 해 가장 인기있는 곡 중 하나가 됐다. 반면 수상자인 티치아나 리발레(Tiziana Rivale)는 곧 무대에서 사라졌다. 1997년 우승자 듀엣인 잘리스(Jalisse)도 얼마 안 가 가요계에서 찾을 수 없게 됐다. 변화에 익숙하지 않은 이탈리아에서도 사회 변화를 받아들이고 파격적인 의상의 락그룹 마네스킨(Maneskin)이 올해 우승한 것도 그렇게 하지 않으면 살아남을 수 없다는 것을 인지하고 있기 때문이다.

음악성을 중시하는 그래미 어워드는 산레모 가요제와는 다르다. 그렇지만 다양성을 중시하고 개방적이라고 자부하는 미국에서 보수적인 이탈리아보다도 더 시대에 적응하지 못 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

사람의 취향은 변하기가 어렵다. 이탈리아에서도 기성세대는 힙합 등의 새로운 장르보다는 영국의 아델(Adele) 등 그래미 어워드에서 선호하는 가수와 장르를 좋아한다. 그렇다면 수상자를 선정하는 과정에서 좀 더 다양한 배경의 사람이 참여하거나 일반인의 투표가 일부 반영이 되는 등의 변화가 필요해 보인다. 그렇지 않다면 그래미 어워드도 오래하기 힘들 수 있다.


정덕희 밀라노 통신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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