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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우디 국영방송 알 아라비아는 5일(현지시간) 살만 왕세자가 이끄는 반(反)부패위원회의 명령에 따라 전날 왕자 11명, 현직 장관 4명, 전직 장관 수십 명이 체포됐다고 보도했다. 잇따른 고위직 파면은 반부패위원회가 만들어진지 불과 몇 시간 만에 일어난 일이라고 영국 파이낸셜타임스(FT)는 설명했다.
로이터통신은 사우디 당국자를 인용해 “포브스의 억만장자 리스트에 이름을 올린 알 왈리드 빈 탈랄 왕자도 이날 구속돼 조사받고 있다”고 전했다. 사우디의 수도 리야드에 있는 빈 탈랄 왕자의 개인 공항은 그의 탈출을 막기 위해 폐쇄된 것으로 전해졌다.
빈 탈랄 왕자는 살만 국왕의 사촌으로 아랍권 최대 부자로 꼽힌다. 그가 소유한 킹덤홀딩스는 애플·트위터·씨티그룹 등 미국 대기업의 상당 지분을 보유한 것으로 알려졌다. 미국 CNBC는 그가 ‘사우디 금융계의 얼굴’로서 이미지를 키워왔기 때문에 이번 체포로 인해 상당한 타격을 입게 될 것이라고 분석했다.
앞서 지난 6월 살만 빈 압둘아지즈 알 사우드 사우디 국왕(82)은 자신의 친아들인 빈 살만 왕세자를 서열 1위 왕세자로 책봉했다. 이후 사우디 당국은 빈 살만 왕세자의 왕위 승계에 걸림돌이 되거나 국정 운영에 비판적인 세력을 대대적으로 걸러내는 데 집중하고 있다.
지난 5월 알 아라비야와의 인터뷰에서 “왕자든 장관이든 그 누구도 법 위에 있을 수 없다. 부패에 연루된 사람은 처벌받을 것”이라고 천명한 바 있는 살만 국왕은 이번에 사우디 왕권 근위대 성격인 국가방위부의 장관과 해군 수뇌부도 바꿨다. 한때 왕세자 자리를 놓고 빈 살만과 경쟁을 벌인 미텝 빈압둘라가 차지하고 있던 국가방위부 장관 자리는 칼레드 빈아야프로, 경제부 장관은 정부 자산 매각 정책을 이끈 친위 인물인 HSBC 중동 최고경영자(CEO) 출신 모하메드 알투와즈리로 교체됐다.
전문가들은 특히 빈 살만 왕세자의 외교 노선과 국내 개혁정책에 반대하는 이들이 부패척결의 표적이 되고 있다고 분석했다. 이같은 부패척결 움직임은 석유의 경제 의존도를 낮추기 위해 빈 살만 왕세자가 주창한 경제 청사진인 ‘비전2030’의 추진과 내년으로 예상되는 국영 회사인 사우디 아람코의 상장에 있어 걸림돌이 될 만한 부분을 사전에 제거하기 위한 것으로 풀이된다.
빈 살만 왕세자는 사우디 개혁 세력의 대표 주자로 왕세자 책봉 전부터 국영 기업 민영화를 통해 자금을 마련, 석유 중심 경제에서 탈피하고 서비스 산업을 강화해 사우디를 선진 경제로 이끌겠다는 목표를 내세우고 있는 인물이다. 역대급 규모의 기업공개(IPO)가 될 것으로 기대를 모으고 있는 사우디 아람코의 상장은 빈 살만 왕세자로선 경제 비전을 달성하고 보수 반대파를 잠재우기 위해 반드시 성공시켜야 하는 가장 중요한 이벤트다. 이를 위해 빈 살만 왕세자는 최근 20년 넘게 석유광물자원부 장관 자리에 앉아있던 알리 알나이미 장관을 낙마시키고 자신의 입맛에 맞는 인사들을 고용하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