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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원재의 스포츠 인사이드] “정몽규 회장님 사퇴가 답입니다”

[장원재의 스포츠 인사이드] “정몽규 회장님 사퇴가 답입니다”

기사승인 2024. 09. 27. 09: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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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구협회에 대한 국회 현안질의를 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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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몽규 대한축구협회장이 지난 24일 국회 문화체육관광위원회에서 열린 대한축구협회 등에 대한 현안질의에 출석해 의원들의 질의에 답하고 있다. 뒷줄 왼쪽은 홍명보 남자 축구대표팀 감독./ 이병화 기자
정몽규 회장님께

최근들어 여러 가지로 신경 쓰실 일이 많을 줄 압니다. 그래서 저까지 이렇게 공개 서신 드리는 일이 송구합니다. 그래도 꼭 드리고 싶은 말씀이 있습니다. 이제 물러나실 때가 되었다는 이야기입니다.

지난 24일 대한축구협회에 대한 국회 문화체육관광부 현안질의를 지켜보고 생각을 굳혔습니다. 누구의 잘잘못을 논하자는 것이 아닙니다. 회장님을 포함하여 협회 수뇌부의 인식이 문제였습니다. 축구를 바라보는 시선이 선진적이지 않았습니다.

현대 사회에서 축구는 단순히 하나의 스포츠가 아닙니다. 그 자체로 보험산업과 자동차 산업 사이에 위치한 산업 규모 세계 제11위의 거대 산업입니다. 문화적 이익 뿐 아니라 막대한 경제적 이익도 창출하는 글로벌 비즈니스입니다. 세계 축구계의 주요 플레이어로 기능하려면 한국 축구는 리그 운영 뿐 아니라 선수 수출입 비즈니스, 행정 등이 모두 글로벌 스텐더드를 따라야 합니다.

그런데 대한축구협회 수뇌부는 아직도 과거의 관행에 갇혀있는 것으로 보였습니다. 현안질의 당시의 발언과 전문성을 기준으로 판단하자면, 빠르게 변화하고 발전하는 국제 축구계의 흐름에 부응할 가능성이 희박했습나다. 이대로 가면 한국 축구는 날이 갈수록 뒤쳐저서 아시아의 변방으로 추락할지도 모릅니다. 어쩌면 한국 축구가 일본 J리그의 하청리그로 전락할 수도 있습니다. 위기입니다. 어렵게 일궈놓은 산업기반이 수뇌부의 그릇된 판단으로 빠르게 무너질 수도 있다는 말입니다.

감독 선임 과정은 '우리끼리' 행정의 끝판왕이었습니다.감독 선임에 보안 유지가 필요하다는 점은 동의합니다. 모든 정보를 공개하면 협상력이 떨어진다는 것도 인정합니다. 하지만 절차를 지키지 않은 것은 또다른 문제입니다. 이 일이 밖으로 새나가지 않을 것이라는 '폐쇄적 자신감' 없이는 불가능합니다. MZ세대는 절차가 공정하면 비록 만족스럽지 못한 결과에도 얼마든지 승복합니다. 그들이 이토록 분노하는 이유를 아직도 모르시겠습니까.

해방 이후 2000년대까지, 대한축구협회는 만성 적자 기구였습니다. 협회장의 대규모 출연이 아니면 운영 및 유지가 불가능했습니다. 지금은 다릅니다. 회장의 기부가 없어도 외국 후원사들의 투자로 운영이 가능합니다. 한국 축구는 후원사들에게 유무형의 확실한 '이익'을 줄만큼 성장했습니다. 이 단계를 넘어서서, 대표팀 뿐만 아니라 프로축구도 이익을 내는 구조가 만들어지면 한국 축구는 완벽한 자생력을 갖추고 세계로 도약 가능합니다.

32년만에 본선 출전권을 획득한 1986 멕시코 월드컵, 김정남 감독은 "출전권을 괜히 땄나 후회했다"고 했습니다. 1985년 12월 멕시코 4개국 대회 때 우리 선수들이 직접 빨래하는 것을 보고 다른 나라 관계자들이 화들짝 놀랐다는 이야기를 하며 덧붙인 소감입니다. 1994년 월드컵을 앞두고 김호 감독은 비디오분석관을 붙여달라고 했습니다. 축구협회의 대답은 '이제까지 그런 것 없이도 잘 해왔는데 왜 따로 돈을 들이나' 였습니다.

2007년 제가 '유럽축구에 길을 묻다-한국축구 산업화 방안'이라는 책을 내자 경기인 출신인 당시 축구협회 고위 관계자가 제게 직접 전화를 주셨습니다. 첫마디를 아직도 잊지 못합니다. '장 교수 주장은 우리 실정에 맞지 않는다, 회장님께 이렇게 보고하면 되겠지요?' 토론이나 문답이 오간 후에 하신 말씀이 아니었습니다. 일방적인 통고였습니다.

한국 축구는 수많은 사람의 희생과 헌신으로 여기까지 왔습니다. 그분들의 노고에 고개숙여 깊이 감사드립니다. 하지만 현대는 우리끼리만 잘해서 한국 축구의 발전을 도모할 수 있는 시대가 아닙니다. 새로운 국제 환경에 적응 가능한 인물들이 축구협회를 책임져야 합니다. 그들은 자신들 세대의 소임을 다한 뒤 다음 세대에게 한국 축구의 배턴을 넘길 것입니다. 한국 축구는 특정 개인이나 특정 세력의 전유물이 아니니까요. 내일이라도 용단을 내려 용퇴하시면 국민이 그리고 축구팬이 회장님의 진정성을 인정하고 그 간의 노고와 공적에 박수를 보낼 것입니다. 회장님의 건강, 건승을 빌며 이만 펜을 놓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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